그 날도 여느 때처럼
엘리트 엠생 백수로서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남들이 일어날 때 자고, 점심먹을 때 일어나는
개오지는 루틴을 돌리고 있었다.
오후 12시.
나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에
잠을 깨우는 진동이 울렸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부터 전화가 온 걸 보고,
내가 게임계에 뿌려놓은 수많은 서류 중 하나가
합격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도파민 싹 돌면서 전화를 받았고,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서류 합격했으니 면접 보라는 말이었다.
공고도 대충 쓴 것 같고,
내 이력서를 오랫동안 읽지도 않은 곳이라서
첫인상은 좋지 않은 곳이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바로 승낙했다.
그 다음날을 면접일로 정하고
바로 면접 준비를 시작했는데,
2시간만에 개 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내 지식에는 구멍이 많았고,
그 마저도 입밖으로 꺼내기에는 정리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평소의 생각들을 말하기만 하면 되니까
준비할 게 서류에 비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오산대학교였다;;
결국 다음날 까지 제대로 준비된 건 1분 남짓한 자기소개 밖에 없었다.
근데 그마저도 좀 별로였다;
내 꼬라지를 보아하니 쉽지 않겠다 싶으면서도
합격은 하고 싶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도착했다.
사무실 문이 열려있길래 그냥 들어갔더니,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뭔가 내가 어그로를 끌기 너무 눈치 보였다.
어떻게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을 지 5초정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운좋게 마침 사무실을 돌아다니던 분과 마주쳤고,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한 1분 정도 기다렸는데,
딱봐도 개빡센 분이 나의 서류를 들고
웃음기 하나 없는 엄근진한 표정으로 회의실로 들어왔다.

실수 한 번이라도 하면
그대로 인격을 말살해 버릴 거 같은
차가운 표정에 개 쫄아버렸다.
컨디션도 별로 좋지않은데
혹시라도 멍청한 소리해서 개 닦일까봐
무서워서 뇌에 힘 꽉 줬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면접관은 정말 친절했다.
가시 돋힌 말로 압박하는 상황은 없었고,
나의 대답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며
면접자로서 존중받는 다는 느낌을 받았다.
면접은 40분 좀 넘게 진행되었는데,
주로 내 이력의 디테일적인 것들을 많이 물어보셨다.
어쩌다가 건축학과에서 전과했는 지, 어쩌다 게임 개발을 진로로 결정했는 지,
전 회사는 어쩌다가 그만 뒀는 지... 등
약간 구라로 이력을 작성한 게 아닌 지를 검증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술 관련 질문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유일했던 기술 질문이 협업 시 충돌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작업하냐는 것이었는데,
이건 팀프로젝트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대답하지 못할 어려운 질문은 딱히 없었고,
전체적으로 괜찮은 분위기로 흘러간 것 같았다.
중간에 나한테 질문하라고 해서,
서류의 어떤 점을 보고 연락 주셨냐고 물어봤더니,
원래 뽑을 사람 골라놨는데, 마지막으로 이력서들을 보니 개중에서 눈에 띄었고,
인상이 좋아서 뽑은 건 아니고, 그냥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연락 줬다고 하셨다.
이거 좀만 늦었어도 지금 나는 개발을 하고 있을 수 없을 뻔했다.
이전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게 기회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차라리 인상이 좋아서 연락줬다고 했으면 했다 ㅋ
왜냐하면 난 내가 빈 깡통인 걸 아니까 실력을 믿는 다는 말이 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슬슬 마무리가 되어갔다.
면접관 : 요새 어떤 게임 하나?
나 : 롤이나 발로란트같은 대중 게임을 주로 한다.
면접관 : RPG는 안좋아하나?
나 : 좋아한다. 와우랑 로아, 메이플 등등 했었다.
면접관 : 모바일 RPG는 안하나?
나 : 모바일 메이플 한 적있다.
면접관 : 오? 많이 해봤나?
나 : 그렇게 많이 안했다.
면접관 : 아..우리가 사실 방치형 RPG를 만드는데..
나 : !!!!!!!!!!!!
공고엔 없던 정보라서 미리 알 수는 없었지만,
중간에 RPG라는 장르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을 때 바로 눈치채고
RPG에 환장한 컨셉을 잡았었야 했었다.
하지만 긴장이 풀리면서 뇌에 줬던 힘도 같이 풀려버려서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
그리고,
면접관 : 마지막으로, 전에 직장 다닐 때, 어땠나?
나 : 혼자서 폭넓은 업무를 담당해서 실력이 빠르게 늘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사수가 없어서 내가 하는 방식이 제대로 된 방식인 지 알 수 없어서 아쉬웠다.
면접관 : ...여기서도 일하게 된다면 사수 없이 혼자 일하게 될텐데...?
나 : !!!!!!!!!!!!!!!!!!!!!!!!!!!!!!!!!!!!!!!!!!!!!!
나 :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인공지능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혼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긴급 회피 기동으로 가까스로 공명의 함정으로 부터 탈출할 수 있었지만,
면접관은 이미 내 첫번 째 대답에서 진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면접은 종료되고 면접관이,
내부적으로 상의한 후에 합격 시 연락하겠다.
합격하지 않으면 연락이 안 갈 수 있다. 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이번 면접에 내가 대답한 것들을 복기하며,
위에 것들에 잘못 대답한 거 같아서 계속 아쉬워했다.
면접관의 마지막 말이
이미 나 떨굴걸로 결정했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뭐 어차피 면접은 끝났고, 이미 지원할 수 있는 공고에 전부 지원한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결과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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